만안릉

단초(丹草) | 2012.12.21 00:28 | 조회 3531

<남조-진>

 

초대. 무제武帝 503~559(557~559 재위)

 1. 휘 : 진패선(陳覇先) / 아명 : 법생(法生)
 2. 자 : 흥국(興國)
 3. 별칭 : 신안자(新安子) → 장성현공(長城縣公) → 진공(陳公) → 진왕(陳王) → 황제(皇帝)
 4. 연호 : 영정(永定)
 5. 시호 : 고조무황제(高祖武皇帝)
 6. 능호 : 만안릉(萬安陵)

 

 

난징 [ 南京(Nanjing, Nanking) ]
중국 장쑤성의 성정부 소재지이다. 난징이란 명칭은 명ㆍ홍무원년(1368)에서 비롯되었다. B.C.333년에 초나라가 월나라를 멸망시킨 후 금릉읍을 두고 또 B.C.221년에는 진의 시황제가 말릉현을 두어서 금릉, 만릉 등으로도 불린다.

선사시대에는 양쯔강 도작문화권에 속해 시내 북음양영 등에는 청련강 문화의 유적이 있다. 삼국오 황룡원년(229)에 오의 손권이 여기에 도읍을 정한 후 동진ㆍ송ㆍ제ㆍ양ㆍ진의 육조에 이르는 남조의 국도로서 오에서는 건업, 남조에서는 건강이라 칭했다. 이 기간에 국도성은 거의 같은 지역으로 추정되며, 주위 20여 리(약 12km), 성문은 6~12문이었다.

남조를 멸망시킨 수나라는 건강성을 파괴하여 경작지를 만들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궁의 유적은 명확하지 않으나 시내 조사강, 서강, 청량산의 오ㆍ동진묘에서 월주요의 명기가 출토했다. 동진시대의 호족 낭사왕의 왕흥지ㆍ민씨부자 일족의 묘가 신민문 밖의 상산에, 안씨일족의 묘지가 노호산에서 발견됐다. 육조 초기 서선교에 있는 전곽묘의 죽림7현ㆍ영계기의 선각화는 동류의 것이 단양 호교대묘에도 있어 회화자료로 중요하다.

남조 제릉의 거의가 시외와 근교에 많은데(강령, 구용, 단양), 특히 서가산에 있는 양(梁)의 숙수(안성강왕, 518 사망), 숙경(양시중, 523 사망), 영년릉, 기린문에 있는 유송무제(422 사망)의 초령능, 양의 숙굉(525 사망)의 묘, 상방진에 있는 진무제(559 사망)의 만안릉, 구용에 있는 양의 숙적(남강간왕, 527 사망)의 묘 등이 유명하여, 이 제릉에 부속하는 석주, 석수, 묘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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